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Ⅴ(눅2:25-35) - 시므온 - 2026. 2. 1 본문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Ⅴ(눅2:25-35) - 시므온 - 2026. 2. 1 성경에는 예수님을 직접 만나 본 수 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 중에서도 아기 예수님을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던 시므온에 대한 기록은 누가복음 2장의 본문의 내용이 유일하다. 아기 예수를 감격스럽게 만나보고 가슴에 안았던 시므온에 대하여는 다른 정보를 알 수가 없다. 어느 지파 출신의 누구의 아들인지, 사회적인 지위가 어떠하였는지 등에 대한 설명이 없다. 아기 예수를 만날 그 당시의 나이도 알 수 없다. 그 후에 에루살렘에서 몇 년을 더 살았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므온은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리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그 당시의 주요한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다. 시므온은 “여호와께서 들으셨다”라는 이름 뜻을 가지고 있다. 누가복음 1장 59절에는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세례 요한에 대한 기록이 있다. 누가복음 2장 21절에는 아기 예수가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태어나기 전에 전해진 천사의 지시대로 예수라는 이름을 갖고 모세의 법을 따라서 정결예식을 행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찾은 내용을 소개한다. 레위기 15장에 보면 정결예식은 번제와 속죄제로 행해졌다. 번제는 아기의 탄생을 감사하며 헌신을 다짐하는 제사이다. 속죄제는 부정함을 거두기 위한 제사이다. 번제물은 어린 양 한 마리, 속죄제는 비둘기 한 마리를 드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몹시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 한 쌍을 드리기도 하였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지내던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였다. 의(義)롭다는 말은 모세의 율법에 충실한 삶을 살던 구약 시대의 인물을 표현하는 말이다. 경건(敬虔)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던 믿음의 사람을 설명하는 말이다. “이스라엘의 위로(慰勞)를 기다리는 자”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기를 기다리던 믿음의 사람이란 말이다. 메시아가 오시기를 기다리던 메시아 대망 신앙의 주인공이었다. 이런 표현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암울하던 그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시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믿음의 표현인 것이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라는 <주님 고대가>라는 부제가 붙은 찬송이 있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오시기를 고대합니다 가실 때 다시 오마 하신 예수님 오 주여 언제나 오시렵니까”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이런 기대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세상살이를 한탄만하고 염세적으로 살아서는 안될 것이다. 이 세상을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 나그네 인생길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말고 낮이나 밤이나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진정한 위로자로 오시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지금 당장 그런 주님의 위로 가운데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 중에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시므온> 이란 제목의 그림이 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는 시므온은 어떤 사람이었기에 태어난 지 팔일이 된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감격해하는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던 사람. 우리는 대개 성령은 사도행전 2장에 성령 강림을 통해서 이 땅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으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이전, 성령 강림으로 초대 교회가 탄생하기 이전에도 구약의 인물들 가운데 골고루 성령이 임하셔서 역사하신 증거를 관찰하게 된다. 예수님 자신도 성령으로 잉태되고 성령으로 탄생되고 성령으로 인도하심을 받고 성령 안에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사탄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셨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평생을 사역하셨다. 예수께서 탄생할 그 당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던 대표적인 인물이 시므온이다. 누가복음 2장의 본문에 보면, 25, 26, 27절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음을 강조한 내용을 접하게 된다. 그렇다.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다. 그는 항상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던 사람이었다. 성령의 임재, 성령의 동행하심 가운데 살아가던 주인공이었다. 이처럼 우리는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의 임재 가운데 살아가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시51:11)라고 기도하였다. 에스겔은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겔43:5)라고 하였다. 이사야는 “마침내 위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사32:15)라고 하였다. 역대상 12장에 보면 하나님은 점점 다윗을 존귀하게 이끌어 가셨다. 하나님은 마침내 다윗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셨다. 지파마다 소문을 들은 용사들이 다윗에게로 몰려들었다. 저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였다. 역대상 12장 16절에 보면,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 자손 중에서 다윗에게로 나아오는 자들이 많았다. 다윗은 저들에게 “진심으로 나를 돕고자 나오는 자들이냐”라고 물었다. “그 때에 성령이 삼십명의 우두머리 아마새를 감싸시니”(대상 12:18)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은 그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재하였다. 성령의 충만한 임재를 체험한 아마새는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있으리니 원하건대 평안하소서 당신도 평안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안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대상12:18)라고 고백을 이어갔다. 다윗은 흔쾌한 마음으로 삼십명의 용사들을 맞아 들였고 아마새로 하여금 그들의 지휘관이 되게 하였다. 역대상 28장에 보면 다윗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을 모든 제반 준비를 다 마쳤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므로 준비만 마무리했을 뿐 건축의 기회는 아들 솔로몬의 때로 미루었다. 12절에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성전 건축의 제반 설계도를 마친 것을 알 수 있다. 다윗은 자기의 의욕을 따라 성전 설계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 조언하는 측근들의 인간적인 지혜를 의지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의 감동,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장차 아들 솔로몬의 때에 지어질 성전 건축의 모든 설계도면까지도 주님으로부터 친히 받기를 원하였다. 역대상 28장 19절에 보면 다윗은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 이는 성전의 설계도를 완성하는 이야기로 끝나서는 않될 것이다. 우리는 인생의 대소사에 일일이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임재 가운데서 살아기를 원하여야 할 것이다. 성전의 설계 뿐만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인생 설계가 주님의 손 안에서 이루어져 가기를 원해야 할 것이다. 내 맘대로, 내 뜻대로, 내 주장대로, 내 경험대로, 내 고집대로가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성령이 임재해 계시는 매 순간으로 살아 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시므온은 그 위에 성령이 계셨다고 했는데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이 계신 증거가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나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결단하는 모습이 아닐까. 때마다 일마다 성령이 나의 삶에 계시기를 원한다면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주님 뜻대로>라는 복음 성가가 있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 서지 않겠네 이런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새달, 새해가 되기를 축원한다.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 시므온은 탄생하신 메시아이신 주 그리스도를 만나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라는 것은 평소에 늘 메시아를 만나 뵙기를 기도하였고 그 기도에 응답이 있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사야서나 미가서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예언의 말씀을 기억한다.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시므온은 그냥 막연하게 기다린 것이 아니라 “네가 죽기 전에 오실 하나님의 아들 주 그리스도의 탄생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우리는 늘 기도하고 기도하며 살아간다. 그 기도의 내용이 어떠하든, 그 기도의 제목이 무엇이든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이루시리라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창세가 12장에 보면 아브람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의 장면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그 이전까지는 아브람은 하나님을 모르고 살던 우상 숭배자였다. 그랬던 그에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찾아오신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아브라함은 조상 대대로 우상 숭배자였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직업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그런 가정에 하나님이 찾아가신 것이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의 나이가 75세였다. 그 나이까지 자녀가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축복하셨다. 때가 되어 이루실 아내 사라를 통한 아들의 탄생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세월만 점점 가고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아브람은 우여곡절 끝에 아내 사래의 여종 하갈을 통하여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탄생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세월이 흐른 후 아브라함은 100세에 90세된 아내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낳았다. 실수와 실패를 뒤로하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선물해 주신 아들 이삭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낳았나. 아내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았나. 아니다.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이고 인내 할 줄도 모르고 기다릴 줄도 모르던 연약한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의 지시를 따라서 아들 이삭이 태어나게 하신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그의 아내 사라의 나이 89세 때에 그의 장막 앞을 지나가던 세 나그네를 대접한 장면을 기억한다. 아브라함은 뙤약볕에 어딘가를 향하여 가고 있는 나그네 세 사람을 선대한 것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냥 나그네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다. 송아지 고기를 대접받은 세 천사는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를 축복하였다. 그리고 일 년 후에 아들 이삭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은 지시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령님은 지시하시는 성령님이시다. 왜 기도하여야 하나. 무엇을 기도하여야 하나. 우리는 답답하고 막연하고 무거운 마음을 기도할 때가 있다. 아니 그럴 때가 정말로 많다. 그러나 기도를 드리다보면 성령님이 말씀하신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신다. 성령님이 지시해 주신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사마리아 성에서 복음을 전하던 빌립 집사에게 성령이 임하였다. 성령은 천사를 동원해서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가는 길까지 가라”(행8:26) 빌립은 순종하였다.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기 나라로 가고 있었다. 수레를 타고 가면서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성령이 빌립에게 말씀하셨다.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빌립은 순종하였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라고 말을 걸었다.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읽기는 읽어도 내용을 깨달을 수가 없다고 했다. 수레에 올라와서 가르쳐 달라고 했다. 이사야서 53장의‘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본문을 읽고 있었다. 빌립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이사야서의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그 내시는 복음을 깨달았다. 가까이 보이는 물을 바라다 보며 세례 받기를 청하였다.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 오는데 성령이 빌립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 갔다. 빌립은 아소도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다. 그 후에 가이사랴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였다. 성령은 말씀하시는 영이요, 이끄시는 영이요, 명하고 가르치고 지시하시는 영이시다. 다가오는 사순절과 함께 올해도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지시하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성령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각 사람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성령의 감동으로 출입한 사람. 또한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하심 가운데 출입하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시므온은 어느 날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갔다. 마침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남편 될 요셉과 함께 율법의 관례를 따라 정결 예식을 행하려고 성전 안에 들어 온 것을 보았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아기 예수를 품에 안아 보기를 청하였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은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하였다. 화가 렘브란트의 “아기 예수를 푸에 안은 시므온” 그림이 있다. 누가복음 2장 29-32절을 보자.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시므온의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한 찬송의 내용이 무엇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뵈었으니 이제는 주님 앞으로 돌아가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주님의 탄생을 보았으니 이제는 진정으로 기쁘고 평안합니다. 주여,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이 아기는 장차 만민 앞에 예비하신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이 아기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십니다. 이 아기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십니다. 라고 찬송한 것이다. 마리아와 남편 될 요셉은 시므온의 찬송가 내용을 듣고 놀랍게 여겼다. 시므온은 마리아와 요셉을 축복하였다. 그리고 마리아게 따로 더 말하였다.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그 내용이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흥하고 망하는 것이 이 아기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이는 이사야 8장 14절의 예언이 성취되는 말씀의 고백이다. 예수님은 그를 미워하고 배척하는 이들에게는 거치는 돌과 걸리는 반석과 같은 분으로 오셨다. 그러나 반면에 그를 믿고 의자하며 섬기고 따르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주님이 되실 것이다. 이사야 28장 17절에 보면, 예수님은 정의를 측량줄, 공의를 저울추로 삼고 인생을 구분하고 심판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해서 이 땅에 세움을 받으신 분이라고 했다. 시므온의 이와 같은 예언의 내용 그대로 실로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끊임이 없이 비방과 멸시와 천대를 당하셨다. 수도 없이 죽여 없애려고 하였다. 급기야는 본디오 빌라도를 통해서 강제로 사형 언도를 내리게 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냄으로 칼이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말씀이었다. 선과 악, 진리와 거짓, 공의와 불의를 구분 짓는 말씀이셨다. 구원과 심판을 구분 짓는 말씀이셨다. 결국 예수님을 불의한 세력의 손에 이끌려 십자가에 죽으셨다. 예수님을 낳은 어머니 마리아는 시므온의 예언대로 칼이 그의 마음을 찌르는듯한 슬픔과 고통을 몸소 다 겪어야만 했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인 <피에타>를 통해서 처절한 슬픔 가운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시체를 품에 안은 어머니 마리아의 비통한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믿는다. 결코 악이 선을 이길 수는 없다. 결코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는 없다. 결코 불의가 정의를 이길 수는 없다. 진리는 영원하며 주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이다. 성령은 믿음의 사람에게 감동을 주시는 하나님의 영이시다. 시므온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 예수의 탄생을 목격하고 아기 예수를 품에 안았던 역사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하나님을 찬송하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마리아에게 예언하였다.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동행과 성령의 지시와 성령의 감동 가운데 살아가고자 할 때에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믿음의 사람을 통해서 일하실 것이다. 예수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예수사랑 조회 12회 2026-02-07 17:27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Ⅵ 일곱 집사(행6:1-6) 2026. 2. 8 26.02.09 다음글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Ⅳ(마16:13-20) - 베드로 - 2026. 1. 25 26.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