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Ⅵ 일곱 집사(행6:1-6) 2026. 2. 8 본문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Ⅵ 일곱 집사(행6:1-6) 2026. 2. 8 일 잘하는 사람을 일꾼, 일은커녕 말만 많은 사람을 말꾼이라고 한다. 초대 교회에는 일곱 명의 집사가 세워졌다. 열두 사도가 모두 다 감당할 수 없는 점점 늘어 나는 일을 맡아 할 일꾼을 뽑은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초대 교회 신자들 중에서 단 일곱 사람을 세운 일은 상징적인 숫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일곱이란 하늘의 수 셋과 땅의 수 넷을 합한 완전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루살렘 초대 교회는 성령 강림 이후로 비약적인 부흥이 계속되었다. 120성도에게 임한 성령의 충만한 임재가 불길처럼 번져 나갔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며 바라고 또 바라기는 우리 교회도 더 이상 머뭇머뭇하거나 꾸물거리지 말고 초대 교회처럼 부흥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우리는 사도행전 6장에 기록된 일곱 집사의 이름을 안다.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안디옥 사람 니골라가 그 주인공이다. 사도행전 6장 후반부와 사도행전 7장 전체에는 스데반 집사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초대 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스데반의 이름은 ‘면류관’이란 뜻이다. 사도행전 8장 전체에는 빌립 집사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그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인 빌립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 중 한 사람인 집사 빌립이다. 사마리아 성의 전도자였던 빌립 집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푼 주인공이다. 사도행전 21장 8-9절에 보면 그의 네 딸들은 모두 다 예언하는 자들로서 초대 교회 복음 전파 현장에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충성되게 쓰임 받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그 외의 다섯 집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성경은 더 이상 알려 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브르고로’는 외경인 ‘요한 행전’의 기록자라고 알려져 있다. 베드로 사도는 그를 ‘니코메디아’의 감독으로 임명했다고 전해진다. ‘니가노르’는 ‘승리자’라는 이름 뜻이다. 전승에 따르면 그도 순교자가 되었다고 한다. ‘디몬’은 ‘보스트라’지역의 감독으로 교회를 섬기다가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바메나’는 트라얀(Trajanus, AD 98-117) 황제 때에 빌립보 지역에서 순교하였다고 한다. 마지막 인물인 안디옥 사람‘니골라’는 그 이름이 ‘백성의 정복자’라는 거창한 이름을 갖고 있다. 누가는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니골라가 안디옥 출신인 것을 강조하였다. 그는 비시디아 안디옥 출신으로 우상을 버리고 복음을 받아들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를 선택한 시대적인 배경을 알리는 사도행전 6장은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시작된다. 여기서 말씀하는 ‘제자’란 예수님의 12제자 말고도 예수의 부활 복음을 믿고 따르며 전하는 제자의 수가 점점 많아져 가고 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내용이다. 요즘 매주일 예배 후에 각자가 전도지와 전도용 물티슈를 들고 돌아 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누군가에게 전도지 한 장을 건넨다고 해서 상대방이 그 자리에서 복음을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복음의 씨앗을 뿌리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땅에 뿌려지는 씨앗이 있어서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마련이다. 씨앗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바위 틈에서라도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것처럼 말이다. 라오스는 중국, 쿠바, 북한, 베트남을 비롯한 공산주의 통제 아래 있는 다섯 국가 중의 한 나라이다. 지구상에는 그 외에도 공산주의식 통제와 영향 아래 있는 나라들이 더 있기는 하다. 라오스는 위로는 중국, 아래로는 태국과 베트남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내륙 국가이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 남북한을 합한 면적보다 좀 더 넓다. 산악 지대가 많다. 인구는 700여만 정도로 아시아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인구를 갖고 있다. 기후는 4월부터 시작되는 우기와 11월쯤부터 시작되는 건기로 나누인다. 5개월 정도 이어지는 건기에는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는다. 라오스에서는 예배, 집회, 성직자 이동, 예배용 건물의 건축, 종교 자료 배포 등에 일일이 허가가 필요하다. 통제가 심하다. 라오스는 공공질서나 국가 안정을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모든 종교 활동을 중단시킬 권한을 정부가 가지고 있다. 성경을 비롯한 종교 서적을 수입하기 위해서는 사전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하고 나라 안에서 유통하는 경우에도 엄격한 검열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스의 기독교는 부흥하고 있다. 라오스 정부가 인정하는 유일한 기독교 교단인 LEC(Laos Evangelical Church)교단 산하에 1,000개 이상의 교회가 있다. 20만명 이상이 신자가 통계되고 있다. 이번에 LEC 본부 빌딩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3층에 거의 천여 명이 앉을 만한 예배당이 있다. 매일 오전마다 지역의 목회자들이 모여서 성경을 연구하고 중보기도하는 장면을 보았다. 전국에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몰려와서 신학 공부에 열심을 내고 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에나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어디서나 역사하신다. 복음은 그 어떤 환난과 핍박과 박해 가운데에서도 불씨가 번져 가듯이 열방을 향하여 번져 나가고 있다. 하나님은 교회의 부흥과 더불어 준비된 하나님의 일꾼들을 선택하셔서 충성을 다하게 하신다. 사도행전 6장에 소개된 예루살렘 교회의 첫 일곱 집사의 선택의 장면이 우리에게 그런 교훈을 전해 주고 있다. 3절에 보면, “일곱을 택하라”라고 했다. 이 일곱 사람을 ‘디아코노스’라고 하는데 이들이 후대에 이어지는 집사 제도의 시작이다. 로마서 16장 1절에 보면,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자매 뵈뵈”를 로마 교회에 추천하는 사도 바울의 편지의 내용을 보게 된다. 거기서 언급하는 ‘일꾼 뵈뵈’가 바로 집사 중의 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다. 빌립보서 1장 1절에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하였다. 목회자를 지칭하는‘감독’과 평신도 중의 일꾼을 말하는‘집사’의 직분과 제도를 구분하여 언급한 것을 알 수 있다. 자, 그러면 누가 과연 교회의 일꾼이며 누가 과연 교회의 집사인가를 묵상하는 중에 은혜가 되기를 바란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교회의 일꾼인 집사를 뽑는 첫 번째 조건은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령의 충만함이란 하나님의 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충만한 것을 뜻한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하였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하였다. 1월 초에 주일 예배 시간에 <성령의 임재, 성령의 내주, 성령의 충만>이란 도표를 그려서 설명한 적이 있다. 그렇다. 성령의 충만이란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성령으로 가득 차고 넘쳐 흐르는 은혜의 단계를 말한다. 에스겔의 환상으로 하면 강물이 발목, 무릎 혹은 허리에 차는 물이 아니라 사천 척의 넘쳐 나는 강물이 되어서 헤엄을 칠만한 풍성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내게 임한 성령의 수의를 충만하게 하는 힘은 말씀과 기도이다. 4절에 보면,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씀하는 기도와 말씀은 사도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도들의 기도와 말씀 사역이 주변의 일곱 집사 뿐만 아니라 점점 늘어나는 모든 주의 제자들에게 선한 영향력으로 번져 가는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나. 세상적인 사람가 시간을 보내면 그 대화의 내용과 관심사가 너무나도 세상적이고 세속적이어서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만나 신앙적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기도와 말씀 안에서 대화의 주제와 이야기의 폭이 무궁 무진해 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에 라오스에서 만난 신학생과 목사님들은 교단이 인정하는 신학교의 석사 과정 중인 학생들이었다. 이번에 여덟 번의 강의를 계속하였다. 중간에 10분씩 쉬고 강행군을 이어 갔다. 사도행전,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등의 말씀을 중심으로 목회자론, 구원론, 교회론, 지도자론에 집중하였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6장 전체의 말씀을 모두 다 소화하였다. 깨알같이 노트에 받아 적는 열공의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성경 말씀의 힘이다. 성령 충만함이란 기도와 말씀으로부터 임하는 것이다.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이란 예배를 의미한다. 예배의 열심이 성령 충만을 이어 가는 관건이다. 예배란 예배당에 모여서 예배하는 예배 이외에도 날마다의 생활 중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자신의 태도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주 안에 주님이 내 안에”라는 관계 말이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라는 관계를 말씀하셨다. 그런 관계 가운데 기도하면 말씀 중심의 삶을 살다 보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15:8)라고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의 영의 충만이 성령 충만이다. 신구약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충만이 성령 충만이다. 기도와 말씀 가운데 성령의 충만이 지속되게 되는 법이다. 또한 지혜의 충만을 말했다. 지혜가 충만한 사람이 집사의 조건이었다. 여기서 말씀하는 지혜의 충만이란 세상적인 지식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업체는 그 기업체의 목적에 적합한 기능인과 전문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 초대교회에는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간의 남편을 잃고 경제적으로 너무나도 어려워서 도움이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는 여성들이 많았다. 저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는 구제의 문제로 인한 갈등과 원망을 해결해 주는 지속적인 사역의 선봉에서 사역할 일꾼을 뽑은 것이 예루살렘 교회의 첫 일곱 집사였다. 생각하여 보라. 갈등과 원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만하고 너그럽게 인내심을 가지고 덕스럽게 사안을 풀어 갈 만한 지혜를 갖춘 일꾼들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나. “매일의 구제”라는 것은 결국은 먹고 마시는 문제이고 입고 쓰는 문제이다. 이러한 기본이 해결되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나고 큰 싸움으로 번지고 결국은 전쟁이 일어나고 마는 것이다. 갈등을 해결하고 원망을 해결하도록 일을 맡겼더니 같이 싸우고 있고, 더 큰 소리만 내고, 일만 더 심각하게 어그러트리고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를 어찌 일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여 은혜롭고 지혜가 충만하여 매사에 해결사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일꾼이 집사의 자격, 집사의 조건, 집사의 능력의 첫 번째 조항이었던 것이다. “난 못해요”라고 뒷 걸음질만 쳐서는 일꾼이 될 수 없다. 주의 일꾼은 “주님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고 잘 해 보겠습니다.”라는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자여야 한다. 남이 못하는 것을 나는 하고, 남이 못 해결하는 것을 나는 해결하고, 남이 엄두도 못 내는 것을 나는 용감하고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주님으로부터 공급 받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일꾼이 아니겠는가. 에스라서의 에스라, 느헤미야서의 느헤미야, 에스더서의 에스더가 그런 인물들이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모세가 그런 주인공이었다. 창세기의 노아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이 족장 시대의 그런 걸출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다니엘 서의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바벨론 포로 시대의 격동기에 이방 땅에서도 돋보이던 하나님의 일꾼이요 그런 주인공들이었다. 칭찬받는 사람. 일곱 집사는 칭찬을 받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뽑은 일꾼이 아니었다. 이미 그 많고 많은 주의 제자들 중에서 검증된 주인공들이었다. 누구에게나 칭찬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서 일곱 명의 일꾼을 뽑았던 것이다. 우리 속담에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 나가서도 샌다”라는 말이 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라는 말도 있다. 이순신은 나라에도 시대적인 구국의 일꾼이었을 뿐만 아니라 홀로 계신 어머니께 대하여도 효자 중의 효자였다. 이순신은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 일만 염려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일기에 보면 어머니 걱정, 아내 걱정, 자녀들 걱정, 집안 일에 대한 염려도 적지 않았다. 칭찬이 무엇인가. 칭찬을 받는 다는 것은 매사가 남다른 것을 말한다. 크고 작은 일을 대강 대강 하지 않고 제대로 잘 해야 한다. 그래야 칭찬을 받을 수 있다. 내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하여야 한다. 주님의 기대를 따라서 해야 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26:42)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 예수님의 이러한 마음가짐이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성취한 것이다. 생각하여 보라. 이는 개인이든 가정사이든 교회의 일이든 다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그러한 충성되고 칭찬 받는 일꾼들의 끊임이 없는 충성과 헌신이 있어서 이 땅에서 주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강남에 가면 도산 공원이 있다. 도산이 누구인가. 도산은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선생의 호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시대적인 인물이었다. 그의 애국심은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할 수 조차 없다. 도산 안창호는 하나님 사랑, 나라 사랑, 다음 세대를 사랑하는 일의 표상이었다. 평안도 대동강 하류 도룡동에서 태어났다. 16살 때에 청일전쟁을 겪었다. 서울에 와서 구세 학당에서 선교사들에게 영어와 성경과 서양학문을 배웠다.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한독립을 위해서 고군분투하였다. 우리는 그가 남긴 수 많은 명언을 기억한다.“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그대가 먼저 건전한 인격이 되라”라는 말을 남겼다. “진리는 반드시 따르는 자가 있고 정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죽더라도 거짓을 버려라”, 애기애타(愛己愛他)라는 말도 남겼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라는 뜻이다. 협력과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낫다.”라는 말도 남겼다. 그의 흥사단(興士團) 운동은 오늘 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1937년 6월, 수양 동우회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체초되었다. 6개월 만인 연말에야 병 보석으로 풀려 났다. 그는 해방을 보지 못하고 1938년 3월 10일에 경성대학 병원에서 입원 생활 중에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영원한 애국 청년이요, 영원한 기독 청년으로 역사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새문안교회의 장로이기도 했던 도산 안창호는 우리 나라의 개화기 역사를 대표하는 칭찬 받는 나라의 일꾼이요 교회의 일꾼이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 일곱 집사의 선택은 온 무리가 기뻐하는 일이었다. 저들은 한결같이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 믿음이 바탕이어야 한다. 믿음이 시작이다. 주님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하나로 어루러진 일꾼을 찾으신다. 믿음이 우선이다. 믿음이 있어야 한다. 믿음이 커야 한다. 믿음이 분명해야 한다. 의심의 안개에 갇히면 안된다. 의심의 불안을 떨치고 벗어나야 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라고 하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11:1-2)라고 하였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이 산 아래서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을 기다리던 여섯 명의 제자가 고치지 못하고 어찌하지 못하던 귀신 들린 어느 아들의 귀신을 내어 쫓고 깨끗하게 고쳐 주신 후에 남기신 교훈의 말씀이다. 주님은 믿음의 사람을 찾으신다. 우리는 귀신에 사로 잡힌 듯한 불신과 의심과 의혹이 가득한 미증유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성경 말씀 안에서 분명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멘 예수사랑 조회 5회 2026-02-09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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