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Ⅱ(마8:5-13) - 백부장 - 20260111 본문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Ⅱ(마8:5-13) - 백부장 - 2026. 1. 11 해마다 매년 첫째 달 둘째 주일을 “청지기 주일”로 지켜 왔다. 십일조를 비롯한 헌신 생활에 대한 강조를 계속해 왔다. 거의 매년 그런 말씀을 나누어 오지만 십일조 생활을 못하는 분들은 여전히 못한다. 말라기 3장의 십일조에 관한 설교를 수도 없이 반복했어도 귀가 열리지 않는 이들이 더러 있다. 그런 가정이 더러 있다. 십일조 제도의 제정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명령도 아니고 모세의 법도 아니다. 하나님이 친히 십일조 신앙를 가르쳐 주셨다. 광야 사십년의 성막 중심 생활과 솔로몬의 성전 중심 생활에는 항상 레위 사람이 있었다. 제사장을 비롯한 레위 지파의 사람들은 백성들이 성막과 성전에 봉헌하는 십일조로 생활하였다. 지난해 말에 마친 여호수아서에도 그런 내용이 여러 차례 반복되어 있다. 레위지파에는 다른 지파들처럼 분배 받은 땅이 없었다. 그 대신 저들은 다른 지파에서 배려해 준 도성에서 살았다. 다른 지파에서 배려해 준 양과 염소와 송아지를 틈틈이 돌보며 지냈다. 그리고 저들의 주요 일과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제사하고 제사를 돕는 일이었다. 그 동안 십일조 신앙 뿐만 아니라 재물에 대한 염려나 두려움이 갇혀서 지낸 이들은 오늘을 시작으로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가능해 지는 믿음이 생기기를 바란다. 헌신하고 봉사하고 충성하는 일에 앞장 서는 모두가 되길 기대하고 소망한다. 지난 주일에 이어서,“예수를 바라본 사람들”이라는 주제의 묵상을 계속하려고 한다. 오늘의 주인공은 백부장이다.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 보면 칭찬 받은 백부장이 몇 차례 등장한다. 그들 중에 마태복음 8장에 소개된 백부장의 일화를 모르는 기독교인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백부장이란 로마 시대의 직업 군인이다. 백 명의 부하를 거느렸다지만 오늘날로 하면 천명, 이천 명 정도 규모의 부하들을 거느리는 정도의 고위직 장교이다. 그런 그에게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하인이 있었다. 중풍병으로 고생하는 부하를 고쳐 보려고 힘써온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마도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다른 좋다는 처방을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을 것이다. 유명하다는 의사도 찾아가 보았을 것이다. 좋다는 약도 여기저기서 구해다 주었을 것이다. 부하를 끔찍이 사랑하는 백부장의 모습 속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부성이 느껴질 정도이다. 심한 중풍병으로 몹시 고생하던 하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좋은 상관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우리는 마태복음 5-7장의 산상 수훈을 안다. 산 위에서 하신 교훈이라고 해서 ‘산상수훈’이라고 한다. 영국에 유학해서 법학을 공부한 인도의 지도자 간디는 기독교인이 아닌 힌두교인이었지만 성경을 탐독했다고 한다. 그는 “성경 중의 성경이 ‘산상수훈’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산상 수훈의 말씀 중에서도 팔복 말씀을 소중하게 여겼다고 한다. 실로 우리는 산상 수훈의 교훈을 통해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싶어한 진리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닫게 된다. 예수께서 산 위에서 말씀을 전하신 후에 산 아래로 내려오셨다. 예수께서 오르셨던 산을 팔복산이라고 한다. 갈릴리 호수 한편 자락에 위치한 나지막한 산이다. 산상 수훈 중에 특별히 팔복의 말씀을 전하셨다고 해서 ‘팔복산’이라고 불리우는 곳이다. 갈릴리 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 곁에는 수 많은 무리가 따랐다. 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신 예수님은 가버나움이란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 때에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리고 예수님께 간청하였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몹시 괴로워 하나이다”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백부장이 대답하였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이런 대답을 들은 예수님께서 놀랍게 여기시며 그의 곁에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 그리고 또 말씀하셨다.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과연 누가 구원받을 자인가를 말씀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반드시 구원받는 것도 아니고 이방인이라고 해서 구원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말씀하셨다.“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놀랍고 감사한 것은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 생각하여 보라.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니다. 로마 사람이다. 이방인이다. 할례 받은 자가 아니다. 모세의 율법을 배운 적도 없다. 아마도 로마의 각양 우상을 숭배하는 가정에서 태어났고 자신도 우상을 숭배하며 살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각색 병자를 고치신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후로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생각하였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어 하였다. 예수님께 문제를 가지고 가면 해결 받으리라는 기대에 부풀러 있었다. 예수님께 중풍병으로 몹시 고생하는 부하의 형편을 말씀드리면 고침을 받을 길이 열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낸 것이다. 그의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나섰을 것이다. 요즘과 같은 통신 수단이 없었으니 묻고 물어서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가느라 여러 날을 고생했을 것이다. 드디어 가버나움 마을에서 예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뵙자마자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서 몹시 괴롭게 지내고 있습니다”이리하여 중풍병으로 고생하던 하인이 고침을 받는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병으로 고생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병을 앓아 본 이들은 안다. 아파 본 분들은 안다. 입원해 본 분들은 안다. 수술을 받아 본 분들은 안다. 전신 마취해 본 분들은 안다. 여러 달, 혹은 여러 해 동안 투병 생활해 본 분들은 안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하게 태어났거나 장애를 갖고 평생을 지내는 이들은 안다. 내가 약하다는 것, 내가 병들어 있다는 것, 혹은 내 사랑하는 가족이 병으로 고생한다는 것이 무얼 말하는지 안다. 누구라도 병이 들면 괴롭고 외롭다. 지난 주 초에 어느 모임에서 어느 신학 대학교 총장을 지낸 분을 만났다. 그도 목사이다. 동생도 목사이다. 부인은 대학교 교수이다. 자신은 목사요 신학 박사요 대학의 총장까지 지냈다. 지금은 은퇴 후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말했다. “남들이 보면 나의 삶이 화려하고 대단해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몇 해 전에 사랑하는 동생 목사가 폐암으로 투병하다가 환갑 이전의 나이에 주님 품에 안겼다. 아직은 젊은 아빠가 가족의 곁을 떠나는 슬픔을 소화하지 못한 세 딸들 중의 둘째 딸은 심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자신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어려서 천재 소리만 들으며 자라난 명석한 딸이 미국에서 홀로 지내며 대학 생활을 하던 중에 삼년 간을 두문불출했다. 나중에야 알았다. 대인 기피와 심한 우울증에 갇혀 지냈다. 세상을 끝내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하였다. 부모는 한국에 있고 젊은 딸은 미국에서 그런 시간을 삼년이나 지냈다. 지옥 같은 세월을 지냈다. 지금은 회복되어 수의사가 되었다. 내과 의사를 만나 결혼도 하였다. 그러나 딸이 그런 고생하고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낼 때의 엄마 아빠의 마음은 가시 방석에 앉아 있는 것과 같았다. “하나님 내 딸을 고쳐 주세요. 세상을 씩씩하게 살아갈 용기를 주세요. 의욕을 주세요. 그렇지 않다며 차라리 저를 데려가 주세요.”밤낮 없이 눈물로 기도하였다. 지금은 그 딸이 건강을 회복하고 동물 의사가 되고 가정도 이루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이태 전에 자신에게 폐암이 찾아 왔다. 수술을 받았다. 이제 겨우 회복되서 외출을 잠시 잠시 한다고 했다. 요즘도 하루에 거의 십만원씩 하는 약을 투약하고 있다고 했다. 하루 하루 살아 있다는 것이 신비라고 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냐고도 말했다. 그렇다. 건강한 하루는 임금도 부럽지 않은 축복의 하루인 것이다. 큰 딸은 미국에서 아시아 역사를 가리치는 유수한 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재료 공학을 전공한 2살 연하의 신랑을 만나 지난 해 가을에 결혼도 하였다. 돌아 보면 고난이 없는 인생이 없다. 한번도 아파보지 않고 한번도 병으로 고생해 보지 않고 사는 이웃이 없다. 한번도 슬품을 겪어 보지 않고 사는 인생도 없다. 오늘 읽은 본문의 심한 중풍병에 걸려서 몹시 괴롭게 지내는 이 하인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좋은 상관을 만났다. 너무나도 훌륭한 상관을 만난 것이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자기 가족도 아닌데 제 곁의 병든 부하를 위해서 이렇게 안타 까워하고 이렇게 애타하는 상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크나큰 복인가. 이 백부장은 소문에 들어 온 예수님의 무엇을 바라본 것일까. 이 백부장에게는 어떤 믿음이 있었던 것일까. 예수께서 고치시리라는 믿음. 그렇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을 만나서 하인의 중풍병을 설명 드리면 예수님이 고쳐 주시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예수님을 찾아 나설 이유가 전혀 없다. 더군다나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믿던 사람도 아니다. 예수님을 믿는 이가 아니었다. 이방 나라 로마 군대의 백부장일 뿐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은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리라는 기대와 믿음이 분명하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나. 오늘 날 우리는 왜 예배하며 살아가나. 뭘 기도하며 살아가나. 예수님께 소원을 아뢰고 기도하면 들어 주신다는 기대와 소망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물론 내가 노력하고 내가 땀 흘리고 내가 성실하고 내가 열심을 다하여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힘쓰고 애써도 못하는 것이 있다. 안 되는 것이 있다.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세상을 내 힘만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갖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 때에 우리는 주님을 찾게 된다. 주님을 의지하게 된다. 주님께 기도하게 된다. 주님께 간구하고 부르짖게 된다. 중풍병은 21세기의 현대 의학으로도 쉽게 고치기 어려운 병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천년 전에 심한 중풍병으로 몹시 고생하는 하인의 병을 고쳐 보려고 예수님을 찾아 나선 이 백부장에게는 예수님을 향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마태복음 8장에는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을 받은 나병 환자, 본문의 백부장의 중풍병 든 하인, 열병으로 고생하던 베드로의 장모가 예수님을 통해서 고침 받은 내용이 나온다. 그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8장 16절에 보면, 귀신 들린 많은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 왔을 때에 일일이 고쳐 주셨다. 귀신을 내어 쫓아 깨끗하게 고쳐 주셨다. 각색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시는 곳곳마다 인종, 성별, 신분에 상관이 업이 누구나 다 병 고침을 받는 은혜를 누리게 해 주셨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천하 만민이 고침을 받고 구원을 받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라고 하였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베드로는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고 갔던 대 제사장 안나스, 가야바를 비롯해서 요한, 알렉산더 문중이 다 모이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빽빽이 둘러 앉은 재판석상에서 이렇게 담대하게 증언하였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4:12) 지난 밤에 베드로는 붙잡혀서 옥에 갇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재판장에 끌러 나온 것이다. 저들은 베드로 사도에게“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며”심문을 시작하였다. 이미 예루살렘 안에는 예수의 부활을 믿고 따르는 남자들만도 오천명이 넘어 섰다. 예수 부활의 소문을 들은 백성들의 변화를 막을 길이 없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예수님을 내 삶의 구주로 영접하고 체험하고 나면 우리 각 사람의 인생은 변화되게 마련이다. 우리가 왜 “날 만나라 날 만나라”이런 찬양을 부르고 또 부르는가.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만나야 한다. 성령에 대하여 이야기로 전해 듣지만 말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여야 한다. 물 세례 뿐만 아니라 불 세례와 성령 세례를 체험해야 한다. 성령의 체험과 성령의 내주하심과 성령의 동행과 성령의 충만함을 날마다의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의 사랑을 말로만이 아니라 나의 일상에서 체험하여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우리들은 약하나 예수 권세 많도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우리는 이런 찬송가를 찬송가 563장을 찾아야만 겨우 따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의 내 일상 속에 나의 삶의 신앙 고백이 담긴 찬양으로 부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 인생이 변한다. 내 인생이 바뀐다. 예수님은 내 병든 몸만 고쳐 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 영과 혼과 육을 새롭게 하신다.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나면 요즘 언론에 도배하는 어느 여성 장과 후보처럼 겉으로만 기독교인 행세하고 속으로는 부패한 인격의 그런 병든 이중인격자로 세상을 살지 않게 된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 병 고침이 능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서 내 몸과 마음과 생각과 뜻과 지정의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주 안에서 참으로 고침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건강한 인격체의 사람을 살아 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다 죄인이지만 올 한 해 믿음이 성숙해져 가는 주인공, 고침 받는 주인공, 영혼육이 강건해지는 주인공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다. 무턱대고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는 종교가 아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말씀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어야 한다. 신구약의 모든 말씀 가운데 담긴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깨우쳐 알아야 한다. 그 말씀대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속 썩이던 30대 아들과 말다툼을 벌리던 60대 아빠의 흉기에 아들이 죽었다. 고양시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버지는 유명한 대학의 저명한 교수이다. 엊그제 7년 형을 받았다. 아버지가 휘두르는 흉기에 아들이 죽고 아버지는 감옥에서 7년을 지내야 한다. 7개월이냐 7년이냐 70년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왜 가정이 그래야 하는가. 왜 부모 자식간에 그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 세상은 엉겅퀴와 가시덤불과 같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인간,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인간의 모습이란 에덴에서 범죄하고 동산 나무숲 사이에 숨어 버린 아담과 하와의 모습 그 자체이다. 에덴 동산의 나무 숲 사이에 숨은 아담과 하와의 모습 속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세상이 악하다. 세상이 죄와 악으로 가득하다. 이번 주 수요일 밤에 묵상할 디모데전서 6장 말을을 미리 보면,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3-5)라고 하였다. 왜 ‘예수 예수’ 하며 살아야 하는가. 왜 예수 안에서, 왜 예수님과 더불어 예배자로 살아야 하는가. 왜 집안에서 가족들이 예수님 모시고 살아야 하는가. 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행복이 무엇인가. 사람답게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는가.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상의 모습이 어떠하여야 하는가. 우리가 신구약의 성경 말씀을 대하다 보면 무슨 은혜를 받게 되나. 무슨 깨달음이 오나. “아니 요즘 내가 얼마나 정신이 없이 바쁘게 사는데, 언제 그렇게 한가하게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 따라 살아가라고만 하세요”라고 여전히 반문하는 이가 있는가. 그래도 주님은 여전히 말씀하신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버움이라”(마11:28-30) 고단하고 분주한 날마다의 일과 가운데 주님의 말씀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며 주님이 주시는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는 각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백부장의 대답을 다시 보라.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이 얼마나 대단한 믿음인가. 우리는 각 사람이 다 성경을 가지고 있다. 핸드폰 앱으라도 성경 말씀을 접할 수 있다. 나의 가까이에 성경책이 있는냐, 내 손 안에, 내 핸드폰 안에 성경 앱이 있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성경의 말씀을 믿는 믿음,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있느냐는 말이다. 엊그제 금요일 밤에 요한 삼서 1장 2절 말씀을 묵상하였다.요한 사도는 그에게 인정 받고 사랑을 받으며 교회적으로 덕망이 있는 가이오에게 축복하는 인사를 하였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러한 말씀을 열 번 백번 묵상해 보자. 이것이 말씀 묵상의 힘이다. 이것이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의 힘이다. 술을 가까이하면 처음에는 내가 술을 먹고 중간에는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나를 삼켜 버린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힘이 그런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의지를 가지고 날마다 조금씩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중에는 하나님의 살아 있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이 나의 삶을 전적으로 이끌어 가게 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대로 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고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4:12)라고 하였다. 너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믿음 뿌리 내리고 주의 뜻대로 주의 뜻대로 항상 살리라 이런 찬양으로 자신을 축복하고 서로를 축복하고 주변을 축복하며 살아가는 나날이 되기를 바란다. 오늘 교독문으로 대한 시편 1편 말씀이 무엇인가.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어떻게 살아가라는 교훈인가. 어린아이라도 알아듣고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 아닌가.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시1:1-6) 말씀대로 되리라는 좋은 믿음, 긍정적인 믿음 가운데서 살아가는 나날이 되기를 축원한다. 칭찬받은 믿음. 그렇다. 이 백부장은 예수님께 큰 칭찬을 받았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이만한 믿음의 사람을 만나 보지 못하였다고 칭찬해 주셨다. 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칭찬인가. 누가 칭찬했는가.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다 칭찬을 좋아한다. 그런데 더군다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이런 칭찬을 받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칭찬을 받기 위해서 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칭찬을 받을 날이 찾아 올 것이다. 가정, 직장, 사업의 현장, 사회의 구석 구석에서 시민의 한 사람, 교인의 한 사람, 예수 믿는 사람다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주님이 나를 칭찬해 주실 것이다. 대통령이 다시 청와대 생활을 시작하였다. 청와대를 거쳐 간 역대 대통령이 얼마나 많은가. 그 곁의 유수한 참모와 보좌관과 장차관들이 얼마나 많은가. 대한민국 역사에 청와대 생활을 경험한 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 중의 한 사람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주대준(1953-2021) 장로이다. 그는 1953년 7월, 6·25전쟁이 끝날 무렵 지리산 자락의 경남 산청군 단성면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중반에 아버지는 동생을 부산 사범학교로 유학 보낼 정도로 집안은 유복했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어느 날, 사업 실패로 빚에 시달리던 부모님과 경남 거제도로 이사를 갔다. 거제도에 간 이후 그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러던 중 거제도 지세포리 예배당이 눈에 들어 왔다. 조그마한 시골 예배당이다. 난생처음 본 예배당 건물이었다. 기독교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을 때였다. 교회 정문에 붙어 있던 ‘주예수를 믿으라'를 보고 “‘주 예수'가 나와 같은 주씨 성을 가진 예수라는 이름의 아저씨 집에는 문패를 저렇게 크게 써 붙여 놓았나.” 라고 생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한 해에 돌아 가셨다.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찾아 가서 친척집을 전전했다. 고아원 생활을 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육군 제 3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전자학을 전공해서 전산 장교로 임관했다. 1980년 당시 육군 대위인 전산 장교 신분으로 행정 안전부의 전신인 내무부에서 운영하는 정부전자계산소에서 프로그램 보수교육을 받았다. 경복궁 돌담을 따라 거닐던 어느 날 사복 경찰관의 제지를 받았다. 그때서야 앞에 보이는 건물이 청와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생처음 청와대를 바라본 순간 마음속으로 기도가 흘러나왔다. "하나님, 청와대에도 언젠가는 전산실이 만들어질 텐데, 그때 제가 저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제게 능력을 주시면 제가 반드시 청와대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셨다. 교육 당시 꼴찌 수준의 프로그래머였던 그는 불과 3년 만에 국방부에서 시행하는 국비 유학 시험에 합격했다. 청와대를 처음 바라보고 꿈을 품은 지 거의 10년 만인 1989년, 청와대 전산실이 창설됐다. 전산프로그램 개발팀장을 공모했다. 그는 수십 명의 유능한 지원자를 제치고 청와대 근무를 시작했다. 이후 전산 직능 공무원이 승진할 수 있는 한계인 전산실장을 넘어 통신처장, 행정본부장, 경호차장으로 승진했다. 20년 동안의 청와대 생활을 끝으로 2008년 12월 30일 경호공무원 최초로 정년 퇴직을 했다. 말단 전산팀장이 경호차장에 승진하기까지 대통령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청와대에서 정년 퇴직한 후에는 KAIST 교수로 부임했다. 7개월 만에 부총장으로 임명됐다. KAIST 개교 40년 만에 최초로 사이버보안연구센터를 설립했다. 해킹탐지 신기술을 개발했다. 나중에는 정보보호대학원을 설립해 석·박사 인재를 양성하며 대한민국 사이버안보 강화에 헌신했다. 주대준 장로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일이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임을 느낀다. 청와대에 근무할 때는 청와대기독신우회를 만들어 회장으로 섬기며 국가 지도자와 국가안보를 위해 기도의 단을 쌓았다. 또 대한민국 100만 공직자 선교를 위해 입법·사법·행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아우르는 한국기독공직자 선교연합회 창립을 주도했다. 현재는 전국 8,000여개 직장선교회의 80만 회원으로 구성된 한국기독교직장선교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있다. 나는 기도의 힘을 믿는다.” 나중에 그는 포항에 있는 선린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선린대학교는 1969년에, 포항 도립 병원 병설의 포항 간호고등학교로 시작된 기독교 대학이다. 나중에는 간호 전문 대학으로, 그 후에는 종합대학으로 발전한 기독교 바탕을 가진 대학교이다. 그의 간증은 계속된다. “나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도 못했다. 나는 두뇌가 썩 좋은 편도 아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와 지성의 집단 카이스트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기적 같은 기록을 세웠다. 이 기적은 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심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세우기 위함임을 고백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은 그의 평생 좌우명이라고 말했다. 시작된 새해와 앞날에 우리 각 사람이 사회의 각 분야마다에서 칭찬 받는 믿음의 주인공으로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예수사랑 조회 5회 2026-01-12 18:59 목록 댓글목록 다음글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Ⅰ(요1:29-34) -세례 요한 - 20260104 26.01.05